
(C) BCB부천방송
- 1970~80년대 스크린 종횡무진하던 당대 최고의 학사 배우이자 스타
- IMF 외환위기로 100억대 자산 파산, 미국서 27개 직업 전전하며 바닥부터 재기
- 기초생활수급자·임대아파트 독거노인 신분에도 57년째 이어온 나눔의 삶
- 부천 ‘향기네 무료급식소’ 돕기 위해 가수 진태령과 토크쇼 ‘향기로운 인생’ 출격
스크린을 호령하던 은막의 스타, 무대 아래에서 이웃의 손을 잡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 날, 서울의 한 양로원 마당에 익숙한 트로트 가락이 울려 퍼졌다. 자원봉사단체가 주최한 이 행사장에는 어르신들의 흥겨운 손뼉 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 공간의 한가운데로 백발의 한 남성이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 어르신의 주름진 손을 꼭 붙잡았고, 휠체어 앞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은 채 따뜻한 눈빛을 맞추었다. 현장의 수많은 이들은 그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영화계를 풍미하며 스크린을 가득 메웠던 배우 한지일(79)이었다.
현재 그는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 위 대신 소외된 사람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과거 영화 속에서 멋진 주인공으로 살았던 그는, 이제 인생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고단한 이들의 하루를 따뜻하게 밝혀주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었다.
한지일 배우는 여전히 과거 ‘스타’로서의 기품과 멋을 간직하고 있었다. 모델 출신다운 감각적인 패션 감각과 특유의 여유로운 태도가 돋보였다. 세련된 안경과 액세서리, 체형에 잘 어울리는 청바지를 소화한 그에게 ‘80세’라는 숫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아 보였다.
그의 스마트폰 달력에는 일정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양로원과 보육원, 탈북민 가정, 장애인 시설 방문은 물론이고 자살 예방 캠페인과 시니어 모델 행사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다채로운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바쁨이 저에게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아직도 저를 필요로 해 준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충분합니다. 특히 많은 후배들이 저를 믿고 따라줄 때 가장 큰 삶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C) BCB부천방송
화려했던 전성기와 대종상의 영예, 그리고 찾아온 인생의 폭풍우
한지일은 과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대스타였다.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여 당시에는 매우 드물었던 고학력 ‘학사 배우’로 통했던 그는, 얼짱과 몸짱이라는 수식어를 동시에 보유하며 당대를 풍미했다. 1970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영화 ‘바람아 구름아’의 주연을 맡으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경찰관’, ‘도시로 간 처녀’, ‘길소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 한국 영화사에 남을 수많은 명작에서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의 연기력은 국내외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1978년 영화 ‘경찰관’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1979년 ‘물도리동’을 통해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1986년 시카고영화제 게츠평화대상 수상작인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에서 열연을 펼쳤으며, 1988년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아다다’의 남주인공으로 활약했다. 1989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강수연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던 명작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는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대종상 남우조연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화려했던 그의 인생 뒤편에는 거대한 폭풍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영화 제작 사업과 주택, 부동산 투자 등으로 100억원대 자산가가 되며 사업가로서도 승승장구했으나, 1997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과도하게 얻었던 융자들이 한순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평택의 호텔과 대전의 5층 건물 등 전 재산을 순식간에 잃었다. 파산과 동시에 가정마저 해체되는 아픔을 겪은 그는 결국 홀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미국에서의 삶은 처절한 생존 경쟁의 연속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모두 내려놓은 그는 자동차 세일즈맨, 화장품 영업사원, 식당 접시닦이, 블라인드 청소, 나무 베는 일, 15인승 밴 운전기사, 농특산물 호객꾼, 보석 판매원, 마트 매니저, 치매 노인 돌보미 등 무려 27가지의 직업을 전전하며 육체노동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세차장으로, 식당 주방으로 뛰어다니며 청소하고 운전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할 일이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명백한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C) BCB부천방송
56년간 멈추지 않은 나눔… “가진 것 없어도 나는 사람 부자”
이처럼 파란만장하고 고단한 삶의 궤적 속에서도 그가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던 단 한 가지가 바로 ‘봉사’였다. 그의 이타적인 삶은 고등학교 시절 적십자 봉사부 활동을 시작으로 무려 56년째 이어지고 있다. 1971년 12월, 사재를 털어 불우이웃 돕기 일일찻집을 열었던 것을 시작으로 그는 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다.
과거 전성기 시절에는 매년 대여섯 차례씩 전국 각지의 양로원을 찾아 연탄과 김장 배추를 직접 배달했다. 의지할 곳 없는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칠순 잔칫상을 수차례 차려드렸으며, 자신의 초청으로 KBS ‘가요무대’를 방청하고 한강 유람선을 타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던 노인들만 해도 150여 명에 달한다.
이러한 나눔의 정신은 미국과 베트남 등 해외 타국 생활 중에도 변함이 없었다. 한 달에 2,000달러를 벌면 그중 절반인 1,000달러를 현지 소외계층에 기부했고, 베트남에 머물 때는 고아원 아이들을 위해 학용품을 꾸준히 전달했다.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곤궁하고 외로워도 남을 돕는 일만큼은 멈출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러한 봉사 정신은 과거 학창 시절,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가난한 친구를 위해 늘 두 개의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하시던 어머니의 살아있는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최근에는 세월의 무게와 고된 노동의 여파로 허리와 목 디스크 진단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 만큼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지만,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탑골공원, 원각사, 영등포, 부천 등의 무료급식소로 향한다. 서 있기조차 힘든 날에는 바닥에 앉아서라도 어르신들에게 배식 물품을 건넨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노인들에게도 늘 ‘어르신’이라 부르며 땀방울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그동안 그의 눈부신 선행을 기리기 위해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국민추천 정부포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수여하려 했으나, 그는 번번이 상을 고사했다. 대신 그 공을 묵묵히 땀 흘리는 후배들에게 돌렸다. 한지일의 추천을 통해 다양한 나눔상과 사회봉사상을 받은 문화예술계 인사가 벌써 100명을 넘어섰다. 그는 자신을 향해 “재산은 없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니 나는 진정한 사람 부자”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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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하나로 기억을 기록하다… 유튜버로 변신한 문화예술계의 마당발
최근 한지일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일상이 생겼다. 바로 개인 유튜브 채널인 ‘한지일TV’를 운영하는 일이다. 현재 약 2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보유한 이 채널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가는 1960~80년대 영화계 선후배들의 근황을 전하고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소중한 아카이브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보유한 화려한 인맥을 바탕으로 김희라, 이정길, 안성기, 노주현, 한인수, 임혁, 엄유신, 장미화, 문성근, 박일남, 김하림, 송기윤, 차도균, 임희숙, 김청, 쟈니리, 조춘, 이계인 등 수많은 추억의 스타들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대중과 마주한다. 남진, 설운도, 조항조 등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스타들은 물론, 얼굴은 눈에 익지만 이름이 가물가물해진 원로 연예인들까지 일일이 찾아가 안부를 묻는다.
그는 값비싼 장비 대신 오직 자신의 스마트폰 하나만을 들고 현장을 누비며 짧은 영상들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다. 이 영상들은 올드 팬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책장이자, 원로 연예인들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가 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난 이민자 출신 셀럽들의 안타까운 부고나 유장현, 신일룡, 최지희 등 흘러간 스타들의 별세 소식은 언제나 그의 공론화를 통해 미디어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원로들의 역사 기록을 그가 도맡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시절 한국 대중문화를 일군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활동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이대로 묻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생들이지요. 누군가는 반드시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야 합니다. 제 영상에 달리는 시청자들의 반가운 댓글 한 줄이 저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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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향기네 무료급식소’ 위해 또 한 번 발 벗고 나선 인생 2막의 서막
현재 한지일의 공식적인 삶의 지표는 다소 쓸쓸해 보일지 모른다. 나라에서 지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며, 서울 강서구 발산동에 위치한 11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는 독거노인이 바로 그의 현재 법적 신분이기 때문이다. 한때 100억 원의 자산을 움직이던 영화 제작자이자 대스타의 거처라기엔 너무나 소박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풍요롭다.
최근 78세의 노장 배우는 또 하나의 위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경기도 부천시 송내역 인근에서 무려 27년 동안 소외된 이웃을 위해 묵묵히 밥상을 차려온 ‘향기네 무료급식소’의 임성택 대표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오랜 세월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급식소를 지켜온 임 대표의 사연을 접한 한지일은 자신이 가진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아낌없이 쏟아붓기로 결심했다.
그 구체적인 실천으로 그는 조만간 부천방송을 통해 새로운 토크쇼 프로그램인 ‘한지일과 진태령의 향기로운 인생’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진태령과 함께 공동 진행자로 나서는 이번 방송은, 우리 사회의 따뜻한 인물들을 조명하고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나누는 고품격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특히 이번 방송 출연은 출연료나 상업적 이익을 완전히 배제한 채 진행된다. 프로그램 방송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수익금은 전액 부천 ‘향기네 무료급식소’의 운영 자금과 독거노인 급식 지원을 위해 기부될 예정이다. 오직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순수하고 이타적인 마음 하나로 방송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와 긴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늦은 저녁, 스마트폰으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한지일 배우가 정성스럽게 보내온 문자 메시지 안에는 그의 평생의 삶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세상에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그는 이제 화려한 조명 아래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낮아짐을 선택하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지금 모습은 과거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주었던 그 어떤 역할보다 아름답고 눈부시다.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봉사와 나눔,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배우 한지일. 그의 향기로운 인생 2막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를 향해 따뜻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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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80년대 스크린 종횡무진하던 당대 최고의 학사 배우이자 스타
- IMF 외환위기로 100억대 자산 파산, 미국서 27개 직업 전전하며 바닥부터 재기
- 기초생활수급자·임대아파트 독거노인 신분에도 57년째 이어온 나눔의 삶
- 부천 ‘향기네 무료급식소’ 돕기 위해 가수 진태령과 토크쇼 ‘향기로운 인생’ 출격
스크린을 호령하던 은막의 스타, 무대 아래에서 이웃의 손을 잡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 날, 서울의 한 양로원 마당에 익숙한 트로트 가락이 울려 퍼졌다. 자원봉사단체가 주최한 이 행사장에는 어르신들의 흥겨운 손뼉 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 공간의 한가운데로 백발의 한 남성이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 어르신의 주름진 손을 꼭 붙잡았고, 휠체어 앞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은 채 따뜻한 눈빛을 맞추었다. 현장의 수많은 이들은 그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영화계를 풍미하며 스크린을 가득 메웠던 배우 한지일(79)이었다.
현재 그는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 위 대신 소외된 사람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과거 영화 속에서 멋진 주인공으로 살았던 그는, 이제 인생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고단한 이들의 하루를 따뜻하게 밝혀주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었다.
한지일 배우는 여전히 과거 ‘스타’로서의 기품과 멋을 간직하고 있었다. 모델 출신다운 감각적인 패션 감각과 특유의 여유로운 태도가 돋보였다. 세련된 안경과 액세서리, 체형에 잘 어울리는 청바지를 소화한 그에게 ‘80세’라는 숫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아 보였다.
그의 스마트폰 달력에는 일정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양로원과 보육원, 탈북민 가정, 장애인 시설 방문은 물론이고 자살 예방 캠페인과 시니어 모델 행사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다채로운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바쁨이 저에게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아직도 저를 필요로 해 준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충분합니다. 특히 많은 후배들이 저를 믿고 따라줄 때 가장 큰 삶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C) BCB부천방송
화려했던 전성기와 대종상의 영예, 그리고 찾아온 인생의 폭풍우
한지일은 과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대스타였다.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여 당시에는 매우 드물었던 고학력 ‘학사 배우’로 통했던 그는, 얼짱과 몸짱이라는 수식어를 동시에 보유하며 당대를 풍미했다. 1970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영화 ‘바람아 구름아’의 주연을 맡으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경찰관’, ‘도시로 간 처녀’, ‘길소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 한국 영화사에 남을 수많은 명작에서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의 연기력은 국내외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1978년 영화 ‘경찰관’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1979년 ‘물도리동’을 통해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1986년 시카고영화제 게츠평화대상 수상작인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에서 열연을 펼쳤으며, 1988년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아다다’의 남주인공으로 활약했다. 1989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강수연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던 명작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는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대종상 남우조연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화려했던 그의 인생 뒤편에는 거대한 폭풍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영화 제작 사업과 주택, 부동산 투자 등으로 100억원대 자산가가 되며 사업가로서도 승승장구했으나, 1997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과도하게 얻었던 융자들이 한순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평택의 호텔과 대전의 5층 건물 등 전 재산을 순식간에 잃었다. 파산과 동시에 가정마저 해체되는 아픔을 겪은 그는 결국 홀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미국에서의 삶은 처절한 생존 경쟁의 연속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모두 내려놓은 그는 자동차 세일즈맨, 화장품 영업사원, 식당 접시닦이, 블라인드 청소, 나무 베는 일, 15인승 밴 운전기사, 농특산물 호객꾼, 보석 판매원, 마트 매니저, 치매 노인 돌보미 등 무려 27가지의 직업을 전전하며 육체노동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세차장으로, 식당 주방으로 뛰어다니며 청소하고 운전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할 일이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명백한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C) BCB부천방송
56년간 멈추지 않은 나눔… “가진 것 없어도 나는 사람 부자”
이처럼 파란만장하고 고단한 삶의 궤적 속에서도 그가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던 단 한 가지가 바로 ‘봉사’였다. 그의 이타적인 삶은 고등학교 시절 적십자 봉사부 활동을 시작으로 무려 56년째 이어지고 있다. 1971년 12월, 사재를 털어 불우이웃 돕기 일일찻집을 열었던 것을 시작으로 그는 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다.
과거 전성기 시절에는 매년 대여섯 차례씩 전국 각지의 양로원을 찾아 연탄과 김장 배추를 직접 배달했다. 의지할 곳 없는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칠순 잔칫상을 수차례 차려드렸으며, 자신의 초청으로 KBS ‘가요무대’를 방청하고 한강 유람선을 타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던 노인들만 해도 150여 명에 달한다.
이러한 나눔의 정신은 미국과 베트남 등 해외 타국 생활 중에도 변함이 없었다. 한 달에 2,000달러를 벌면 그중 절반인 1,000달러를 현지 소외계층에 기부했고, 베트남에 머물 때는 고아원 아이들을 위해 학용품을 꾸준히 전달했다.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곤궁하고 외로워도 남을 돕는 일만큼은 멈출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러한 봉사 정신은 과거 학창 시절,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가난한 친구를 위해 늘 두 개의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하시던 어머니의 살아있는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최근에는 세월의 무게와 고된 노동의 여파로 허리와 목 디스크 진단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 만큼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지만,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탑골공원, 원각사, 영등포, 부천 등의 무료급식소로 향한다. 서 있기조차 힘든 날에는 바닥에 앉아서라도 어르신들에게 배식 물품을 건넨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노인들에게도 늘 ‘어르신’이라 부르며 땀방울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그동안 그의 눈부신 선행을 기리기 위해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국민추천 정부포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수여하려 했으나, 그는 번번이 상을 고사했다. 대신 그 공을 묵묵히 땀 흘리는 후배들에게 돌렸다. 한지일의 추천을 통해 다양한 나눔상과 사회봉사상을 받은 문화예술계 인사가 벌써 100명을 넘어섰다. 그는 자신을 향해 “재산은 없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니 나는 진정한 사람 부자”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C) BCB부천방송
스마트폰 하나로 기억을 기록하다… 유튜버로 변신한 문화예술계의 마당발
최근 한지일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일상이 생겼다. 바로 개인 유튜브 채널인 ‘한지일TV’를 운영하는 일이다. 현재 약 2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보유한 이 채널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가는 1960~80년대 영화계 선후배들의 근황을 전하고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소중한 아카이브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보유한 화려한 인맥을 바탕으로 김희라, 이정길, 안성기, 노주현, 한인수, 임혁, 엄유신, 장미화, 문성근, 박일남, 김하림, 송기윤, 차도균, 임희숙, 김청, 쟈니리, 조춘, 이계인 등 수많은 추억의 스타들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대중과 마주한다. 남진, 설운도, 조항조 등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스타들은 물론, 얼굴은 눈에 익지만 이름이 가물가물해진 원로 연예인들까지 일일이 찾아가 안부를 묻는다.
그는 값비싼 장비 대신 오직 자신의 스마트폰 하나만을 들고 현장을 누비며 짧은 영상들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다. 이 영상들은 올드 팬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책장이자, 원로 연예인들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가 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난 이민자 출신 셀럽들의 안타까운 부고나 유장현, 신일룡, 최지희 등 흘러간 스타들의 별세 소식은 언제나 그의 공론화를 통해 미디어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원로들의 역사 기록을 그가 도맡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시절 한국 대중문화를 일군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활동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이대로 묻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생들이지요. 누군가는 반드시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야 합니다. 제 영상에 달리는 시청자들의 반가운 댓글 한 줄이 저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C) BCB부천방송
부천 ‘향기네 무료급식소’ 위해 또 한 번 발 벗고 나선 인생 2막의 서막
현재 한지일의 공식적인 삶의 지표는 다소 쓸쓸해 보일지 모른다. 나라에서 지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며, 서울 강서구 발산동에 위치한 11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는 독거노인이 바로 그의 현재 법적 신분이기 때문이다. 한때 100억 원의 자산을 움직이던 영화 제작자이자 대스타의 거처라기엔 너무나 소박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풍요롭다.
최근 78세의 노장 배우는 또 하나의 위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경기도 부천시 송내역 인근에서 무려 27년 동안 소외된 이웃을 위해 묵묵히 밥상을 차려온 ‘향기네 무료급식소’의 임성택 대표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오랜 세월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급식소를 지켜온 임 대표의 사연을 접한 한지일은 자신이 가진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아낌없이 쏟아붓기로 결심했다.
그 구체적인 실천으로 그는 조만간 부천방송을 통해 새로운 토크쇼 프로그램인 ‘한지일과 진태령의 향기로운 인생’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진태령과 함께 공동 진행자로 나서는 이번 방송은, 우리 사회의 따뜻한 인물들을 조명하고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나누는 고품격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특히 이번 방송 출연은 출연료나 상업적 이익을 완전히 배제한 채 진행된다. 프로그램 방송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수익금은 전액 부천 ‘향기네 무료급식소’의 운영 자금과 독거노인 급식 지원을 위해 기부될 예정이다. 오직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순수하고 이타적인 마음 하나로 방송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와 긴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늦은 저녁, 스마트폰으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한지일 배우가 정성스럽게 보내온 문자 메시지 안에는 그의 평생의 삶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세상에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그는 이제 화려한 조명 아래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낮아짐을 선택하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지금 모습은 과거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주었던 그 어떤 역할보다 아름답고 눈부시다.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봉사와 나눔,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배우 한지일. 그의 향기로운 인생 2막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를 향해 따뜻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